등기 우편 배달 과정에서 발생한 민원으로 고통받던 한 집배원이 극심한 스트레스 끝에 세상을 떠났다.
4일 JTBC에 따르면, 지난 2021년 4월 21년차 집배원 A씨는 부재중인 수신인을 대신해 '본인 수령'으로 처리한 뒤 등기 우편을 우편함에 꽂아 넣었다. 수신인이 직접 우체국을 방문해야 하는 불편을 덜기 위한 편법이었다.
유족 측은 "그렇게 해도 그 전에 무방했어서 그렇게 했다고 들었다. 확실한 건 아빠(A씨)가 잘못하신 게 맞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며칠 후 민원 전화가 빗발치기 시작했다. 퇴근 후에도, 새벽에도 전화벨이 울렸고, A씨는 가족에게 들키지 않으려 민원 전화를 받으러 밖으로 나가곤 했다는 게 유족 측 주장이다.
민원인은 공전자기록 위작과 우편법 위반 혐의로 A씨를 고소했다고 한다. 수사 결과는 각각 '기소유예'와 '혐의없음'이었지만, 6개월에 걸친 수사 과정이 남긴 상처는 깊었다. 이후 A씨는 이 사건을 이유로 이듬해 '견책' 징계를 받았고, 그해 인사평가에서는 전체 직원 중 최하위로 평가됐다. A씨는 평생 두 차례 기관장 표창을 받을 만큼 성실했던 집배원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가족은 당시 이같은 사정을 전혀 알지 못했다고 한다. 유족 측은 "퇴근하고 집에 오셔도 엄청 무기력하고 (기운 없는 사람처럼) 그냥 앉아 계시다가 주무시고(는 했다)"고 떠올렸다.
A씨는 가족에게 알리지 않은 채 두 달간 병가를 냈다. 복귀를 앞둔 8월, 그는 자신의 차량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A씨가 가족에게 남긴 것은 단 네 개의 녹음 파일뿐이었다. 파일 속 목소리 대부분은 민원인의 것이었다고 한다.
녹음파일에서 민원인은 "아저씨 이거 고질적이구나, 기다려보세요. 하루이틀이 아니구만요. 내가 어떻게 아저씨 이렇게 계속 감시를 해야 할까요. 내가 변호사한테 다시 물어보려니깐 전부 (폐문 부재가 아닌) 수취인 부재로 바꿔놓으세요"라고 했고, A씨는 조용히 "사모님 말씀대로 바꿀게요"라고 답했다.
민원인은 녹음파일에서 상급자를 거론하며 "우체국장을 상대로 형사고소를 할란다. 그렇게 멍청한 XX(상급자)가 이런 짓거리를 하고 있으니깐"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가족은 진상 규명을 위해 관련 자료 공개를 요구했지만, 기관은 "공개하기 어렵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유족은 A씨의 죽음을 공무상 재해로 인정해 달라며 유족급여를 신청했지만, 인사혁신처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행정소송으로 이어진 재판 과정에서 감정의는 "일련의 공무상 사건으로 인한 자살로 판단하는 것이 정신의학적으로 타당하다"고 진단했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사회 평균인이 도저히 극복할 수 없을 정도의 업무상 스트레스 때문으로 볼 수 없다"며 기각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상담전화 ☎109 또는 SNS상담 '마들랜'을 통해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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