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2009년 통합 이후 16년 만에 대규모 구조조정 논의의 중심에 섰다. 이재명 대통령이 "땅장사" 를 지적하며 공공기관 개혁의 칼날을 겨눈 데다, 기존 교차보전 방식의 한계가 명확히 드러나면서 근본적 개혁이 불가피해진 상황이다.
국토교통부는 28일 이상경 국토부 1차관과 임재만 세종대 교수(민간위원장)를 공동위원장으로 하는 'LH 개혁위원회'를 공식 출범시키며 개혁 방안 마련에 본격 착수했다.
LH는 2009년 한국토지공사와 대한주택공사 통합으로 탄생한 초대형 공기업이다. 애초 토공의 택지 개발이익으로 주공의 임대주택 적자를 보전한다는 취지였으나, 이 구조는 오히려 LH의 발목을 잡았다는 평가다.
실제 LH의 영업현금흐름은 통합 직후인 2009년 1조8천억원 순유입에서 2010년 9조원 유출로 급전했다. 이후 지속적인 적자 구조가 고착화돼 2023년 2조2천억원, 지난해에도 4천억원의 현금 유출을 기록했다.
문제의 핵심은 LH가 유지해온 교차보전 방식에 있다. LH는 택지를 조성해 민간에 높은 가격으로 분양하고, 여기서 얻은 수익으로 임대주택 손실을 메우는 구조를 고수해왔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택지 가격 상승이 집값 상승을 부추기고, 개발이익이 일부 건설업체와 분양권자에게만 돌아간다는 비판이 제기돼왔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교차보전 체계는 이미 지속가능성의 한계에 도달했다"며 "근본적인 사업 구조 전환 없이는 LH의 미래를 담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개혁 논의는 토지 매각 중심에서 벗어나 임대형 택지공급으로의 전환, 나아가 지역본부를 자치단체 산하 공기업과 통합하는 방안까지 다양하게 제시되고 있다.
이 가운데 임대형 공급은 공공이 토지 소유권을 유지하면서 장기적으로 개발이익을 사회에 환원하자는 구상이다. 그러나 이 경우 매각 수익이 사라져 초기 개발비용 조달이 쉽지 않다. 채권 발행이나 주택도시기금 차입이 거론되지만, 매년 수조원대 적자가 누적되는 임대주택 사업의 안정적 재원 확보 방안은 여전히 미지수다.
임 교수는 "토지를 매각하지 않고 임대한다면 결국 택지를 조성하는 자금이 택지를 임대해서 얻는 수익으로 장기적으로 상환하고, 그러고 나서도 이익이 남고 그 이익을 공적으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임대료를 원가 기준으로 낮게 설정해서는 불가능하므로 상업용지에서 높은 수익을 얻거나 시장임대주택을 별도 운영하는 등의 설계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대안은 LH 지역본부 단위를 쪼개 자치단체나 지역 개발공사로 이관하는 방안이다. 이는 물량 중심의 획일적 공급을 벗어나 지역 단위에서 맞춤형 주거정책을 가능케 한다는 논리다. 국정기획위원회 경제2분과 위원으로 참여한 김세용 고려대 교수도 그간 "광역단체 산하 공기업과 LH 지역본부를 통합해 개발업무를 맡기고, LH는 주거복지 정책 전담 기구로 재편해야 한다"고 제안해왔다. 이는 현 정부의 지역균형발전 전략과도 부합한다는 평가다.
하지만 구조조정 과정에서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임대주택 사업의 안정적 재원 확보가 관건이다. 토지 매각 수익이 사라질 경우 초기 개발비용 조달과 매년 수조원씩 누적되는 임대주택 적자 해결 방안이 모호한 상황이다.
16년간 유지된 초대형 조직을 분리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행정적·재정적 혼란도 우려된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LH 분리를 검토했지만 임대주택 존립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는 이유로 철회한 전례가 있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이번 개혁은 단순한 조직 개편이 아니라 주거복지와 부동산 시장 안정이라는 국가적 과제를 동시에 해결해야 하는 복합적 숙제"라며 "개발이익 환수, 공공임대 지속가능성, 지방분권적 주택공급 체계 등 해묵은 쟁점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LH 개혁의 성패가 단기적 구조조정보다는 장기적이고 지속가능한 재원 확보 방안 마련에 달려 있다"고 했다.
이와 함께 단순한 땅 장사가 아니라, 직접 개발과 민간 협력을 병행하는 투 트랙 전략을 모색해야 현재 LH의 고질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목소리도 나온다.
정성훈 대구가톨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LH가 모든 택지와 주택을 직접 개발한다는 것은 분명 한계가 있다"며 "서민과 중산층을 위한 공동주택은 LH가 직접 짓고 고급 아파트 등 민간에서 더 효율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영역은 민간에 맡기는 투 트랙 전략이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송원배 대구경북부동산분석학회 이사(빌사부 대표)는 "민간에 넘길 수 있는 영역을 분류해 과감히 외주화해야 한다"며 "공공성과 효율성을 담은 민간합작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청년,신혼,고령자 맞춤형 주거지원에도 임대료를 현실화 해야 한다"면서 "단순 토지 매각을 통한 수익금으로 공공복리 시설에 투입하는 것으로는 경영 효율성 한계가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신도시와 구도심의 주택사업 활성화를 통해 LH의 수익구조를 개선하는 방안도 제시됐다.
이병홍 대구과학대 금융부동산과 교수(대구경북부동산분석학회 회장)는 "LH가 공적 책무를 수행한다는 취지에서 주택공급의 방향성을 제시해 주택 실수요자가 예측 가능한 주택매수 계획을 수립할 수 있도록 연도별, 지역별 특성을 반영한 '공공주택 공급 마스터플랜'을 수립해야 한다"면서 "도심 내에서는 LH 참여형 소규모주택정비사업과 정비사업의 인센티브를 확대해 정비사업 기간 단축과 원주민들은 추가분담금을 줄인다면 구도심의 주택문제 해소 및 LH의 수익구조에도 긍정적이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댓글
(0) 로그아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