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구 북구에 사는 85세 A씨는 최근 노인복지관에서 ‘웰다잉’에 대한 강의를 듣고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원하지 않는다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했다. 그는 “누구에게나 닥치는 죽음 앞에서 스스로의 존엄을 잃지 않고 자식에게도 부담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스스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자가 300만명을 돌파한 가운데, 연명의료 중단 결정 시점이 임종 한 달 이전일 경우 마지막 달 의료비가 절반 수준으로 줄어든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12일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건강보험연구원은 최근 발표한 '연명의료결정제도 효과분석 및 개선방안' 보고서를 통해 이 같은 사실을 밝혔다.
이번 연구는 2023년 사망자 약 35만 명의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연명의료를 중단한 그룹과 일반 사망 그룹 각각 4만4천425명의 생애 말기 의료비를 비교 분석했다.
보고서의 핵심은 연명의료 중단 결정의 시기였다. 연구 결과 사망 30일 이전에 미리 연명의료 중단을 결정하고 이행한 환자의 마지막 한 달 의료비는 평균 약 460만 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특별한 계획 없이 임종을 맞은 일반 사망자 그룹의 같은 기간 의료비(약 910만 원)의 절반에 불과한 수치다.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등 직접적인 연명의료에 드는 비용 역시 한 달 전 결정 시 약 50만원으로 일반 사망자(189만원)의 4분의 1 수준까지 떨어졌다.
반면 임종이 임박해 급하게 결정하는 경우 오히려 의료비가 급증한 것으로 확인됐다.
연명의료 중단을 이행한 사망자의 약 73%가 사망하기 불과 한 달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결정을 내린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사망 8일에서 30일 사이에 중단을 결정한 그룹은 마지막 달 의료비가 1천800만원에 달해 일반 사망자보다 두 배 가까이 큰 비용을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중단 결정 직전까지 고가의 의료행위가 집중되다가 중단되기 때문"이라며 이는 중단 결정에 대한 논의가 제때 이뤄지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방증한다고 설명했다.
환자 본인의 명확한 의사 표현 또한 중요한 변수로 확인됐다. 환자가 직접 연명의료 중단 의사를 결정했을 경우가 가족이 결정했을 때보다 생애 말기 의료비가 더 낮았다.
보고서는 "사망이 임박해서 결정을 내리기보다 장기적 관점에서 계획을 세울 경우 사망 전 의료비가 낮아짐을 확인했다"며 "환자가 숙고를 통해 자기 의사를 결정할 수 있도록 보다 이른 시점부터 사전돌봄 계획 수립이 필요하며 이를 위한 사회적 논의와 제도 개선이 뒤따라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에 따라 연명의료 중단이 가능한 시점을 현재의 '임종 과정'에서 '말기' 환자로까지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사망이 임박한 시점이 아닌, 수개월 내 사망이 예측되는 말기 상태부터 환자의 자기 결정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취지다. 말기와 임종 과정이 구분이 쉽지 않은 데다 제도 취지를 살려 생애 말기 환자와 가족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켜야 한다는 것이 주장의 근거다.
대한의학회 등 의료계에서도 대다수가 이같은 방향에 찬성하는 추세다. 지난해 보건복지부의 의뢰로 연세대 산학협력단이 수행한 연구에서 관련 의학회 27곳 중 22곳(81.5%)이 연명의료 중단 시점을 앞당기는 데 찬성했고,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대표 발의한 법 개정안도 국회에 제출된 상태다.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도 취임 전 인사청문회 서면 답변에서 "연명의료 유보·중단 결정의 이행은 임종기에 국한돼 환자의 자기결정권 및 최선의 이익 보장이 제한된다는 지적이 있어 이행 범위 확대(임종기→말기) 검토 필요성에 공감한다"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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